번역 게재 · (중)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다론 아제모글루(Daron Acemoglu) ·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 ·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 브루킹스 연구소, 2026년 2월
(중) Ⅱ. 노동자 친화적 AI를 위한 우리의 개념적 틀 (표 1, 그림 1, 그림 2 포함)
연구소 홈페이지 성능 상 분량을 세 차례가 아니라 네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이제 우리의 개념적 틀을 소개하고, 노동자 친화적 기술의 특징과 그것이 다른 유형의 기술 발전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다 공식적으로 정의한다.
기술이 숙련과 전문성의 가치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이 숙련과 전문성에 노동시장 가치를 부여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최저임금법, 단체교섭 제도, 사회 규범 등 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많지만,
시장경제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상당 부분, 그 자체로 시장 가치를 지닌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2 과업(Task)은 관념적 개념이다. 과업은 넓게도 좁게도 정의할 수 있지만, 일의 기본 단위로 생각하면 유용하다. 대부분의 과업은 특정한 능력이나 노하우를 요구한다. 우리는 그 노하우를 전문성이라 부른다. 특정 과업의 전문성은 전문화되어 있고 오랜 훈련이 필요하며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들 수도 있고(예: 심장 수술), 흔하거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예: 진열대 채우기).
"숙련(skills)"과 "전문성(expertise)"이라는 말은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숙련은 분석적 추론, 리더십, 손재주, 창의성 같은 폭넓은 능력이다. 폭넓은 숙련은 여러 영역에 두루 쓸모가 있기 때문에 견고하고 오래가는 시장 가치를 갖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가치도 시간이 흐르며 변할 수 있다(예: 미국에서 신체적 힘은 과거보다 가치가 낮아졌을 것이다). 이와 달리 타이핑, 코딩, 용접, 제빵, 번역, 재봉, 항해 같은 많은 직무 과업은 주로 좁은 영역 안에서만 쓰이는 구체적이고 형식적인 전문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특수성을 반영하여, 특정 형태의 전문성의 시장 가치는 기술 변화로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전문성이 쓸모없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롭게 중요해지고 활용 가능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AI 기반 언어 번역 도구가 능숙해지고 어디서나 쓰이게 되면서, 미국에서 전문 번역가의 고용은 다소 줄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Abril 2025). 외국어 능력은 가까운 미래에도 쓸모가 있을 비교적 폭넓은 숙련이지만, 언어 번역이라는 전문성의 노동시장 가치는 분명히 위협받고 있다.3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종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든 사례다. 데이터 과학은 빅데이터의 등장으로 사실상 새로 생겨난 참신하고 전문화된 전문성이다. "데이터 과학자"라는 명칭은 200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한 기사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Davenport and Patil 2012), 미국 통계 기관이 이를 공식 직종으로 인정한 것은 2018년에 이르러서였다(BLS 2018, 직종 15-2050). 그럼에도 2024년 미국에서 일하는 데이터 과학자는 24만 6,000명이었고, 중위 연소득은 11만 3,000달러였다(BLS 2025c).4
이 사례들이 시사하듯, 모든 전문성이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노동시장 가치를 지니려면 전문성은 두 가지 특성을 갖춰야 한다. (1)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어떤 활동에 반드시 필요해야 하고, (2) 희소해야 한다. 즉 흔하게 구할 수 없거나 쉽게 만들어 낼 수 없어야 한다. 희소성이 왜 중요한지 보려면, 서로 관련된 직종인 학교 앞 교통안내원이나 공사장 신호수와 항공교통관제사를 견주어 보라. 학생과 다른 보행자의 안전이 이들에게 달려 있지만, 교통안내원과 신호수는 보통 연 4만 달러 안팎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다(BLS 2024). 반면 항공교통관제사는 보통 연 14만 5,000달러 정도를 버는데, 이는 교통안내원의 3.5배다. 항공교통관제사도 사실상 하늘의 교통안내원인 셈인데도 말이다(BLS 2025a). 이 임금 격차는 무엇으로 설명되는가? 주된 답은 전문성의 상대적 희소성이다. 신체가 건강한 성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1~3일의 훈련으로 교통안내원이나 신호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증된 항공교통관제사가 되려면 2~4년의 대학 수준 교실 훈련에 이어 수천 시간의 현장 수습을 거쳐야 한다(FAA n.d.b.). 이러한 전문성의 차이가 항공교통관제사를 대체하기 어렵게 만든다. 초등학교에 갑자기 교통안내원이 부족해진다면, 학교는 교사, 학부모, 은퇴자, 심지어 항공교통관제사를 손쉽게 훈련해 그 일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공항에 항공교통관제사가 부족해진다면, 교통안내원이 그 자리를 메울 수는 없다.
우리는 노동자 친화적 기술을, 인간의 역량을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하는 기술로 정의했다. 여기서는 기계, 알고리즘, 그 밖의 혁신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이 이러한 가치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다. Acemoglu, Kong, Restrepo(2025)의 분류를 이어받아 확장하면, 기술을 경제적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는 다섯 가지 큰 범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노동 증강 기술, (2) 자본 증강 기술, (3) 자동화 기술, (4) 현재 다른 사람이 하는 더 정교한 과업을 노동자가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전문성 평준화 기술, (5)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이다.5
아래에서 설명하듯이, 이 다섯 범주 가운데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만이 명백하게 노동자 친화적이다. 즉 패자는 없고 수혜자만 만들어 낸다. 이와 가까운 것이 전문성 평준화 기술인데, 이는 전문성이 덜한 노동자가 예전에는 다른 영역의 전문성을 요구하던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기술에는 잠재적 이점이 많지만, 일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고 다른 일부에게는 경쟁을 격화시킴으로써 노동시장에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전문성 평준화 기술을 명백히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이 다섯 범주는 개념적으로 구별되지만, 현실의 기술 대부분은 한 범주에 깔끔하게 들어맞기보다 여러 범주의 요소를 결합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미묘한 지점은 다음에서 논의한다. 표 1은 이 논의를 요약한 것이다.
우리는 노동 증강 기술을, 노동자가 이미 하고 있는 과업을 더 효과적으로 해내게 하는 기술로 정의한다.6 예컨대 전동 케이블 스트리퍼는 노동 증강 도구다. 수동 와이어 스트리퍼를 전동 케이블 스트리퍼로 바꾼 전기기술자는 전기 설치 작업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전문성, 생산성, 임금. 노동 증강 기술은 기존 과업을 자동화하지도, 이 노동자 집단이 하는 일의 범위를 넓히지도 않으므로 전문성의 가치를 직접 끌어올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 소득에 미치는 순효과는 노동자의 산출이 늘어날 때 가격이 어떻게 조정되는지에 따라 달라지며 불분명하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대개 가격이 낮아지거나(소비자에게 이득), 임금이 오르거나(노동자에게 이득), 둘이 어느 정도 함께 나타나지만, 노동 증강 기술이 노동 수요나 소득을 반드시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노동소득분배율. 노동자가 이미 수행하던 과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 증강 기술은, 일차적으로는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과업 분담을 바꾸지 않으며, 그 결과 부가가치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에는 작은 영향만 미친다.7
노동 증강 기술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주듯이, 자본 증강 기술은 기계(알고리즘, 공정, 그 밖의 혁신을 포함)의 생산성을 높인다. 자본 증강 기술은 기계가 현재 하는 과업을 더 잘, 더 싸게, 또는 더 빠르게 수행하게 만든다. 우리의 목적상 노동 증강 기술과 자본 증강 기술은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전기기술자의 손 펜치를 전동 케이블 스트리퍼로 바꾸는 것(노동 증강 변화)이나 그 케이블 스트리퍼를 더 나은 모델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자본 증강 변화)이나, 둘 다 전기기술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표 1. 기술 유형과 노동시장 결과
| 기술 유형 | 예시 기술 | 노동생산성 | 인간 전문성의 가치 | 노동소득분배율 변화 | 노동자 친화적인가? |
|---|---|---|---|---|---|
| 1. 노동 증강 기술 | 수동 스트리퍼를 대체한 전동 케이블 스트리퍼 | + (시간당 산출 증가) | +/− (전문성의 관련성·유용성은 높아지나, 산출 증가로 가격이 낮아질 수 있음) | ≈ 0 (과업 재배분 없음) | 불분명 |
| 2. 자본 증강 기술 | 더 가볍고 빠른 전동 케이블 스트리퍼 | + (시간당 산출 증가) | +/− (전문성의 관련성·유용성은 높아지나, 산출 증가로 가격이 낮아질 수 있음) | ≈ 0 (과업 재배분 없음) | 불분명 |
| 3. 자동화 기술 | 케이블 설치 로봇 | + (시간당 산출 증가) | − (기존 전문성을 쓸모없게 만듦) | − (노동이 하는 과업은 줄고, 자본이 하는 과업은 늘어남) | 노동자 친화적이지 않음 |
| 4.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 | 이더넷, 광섬유, 재실 감지 | + (시간당 산출 증가) | + (새로운 전문성이 필요해짐) | + (노동이 하는 과업은 늘고, 자본이 하는 과업은 줄어듦) | 명백히 노동자 친화적 |
| 5. 전문성 평준화 기술 | 혈중 산소 측정기 | + | +/− (신규 진입자는 이득. 기존 전문가의 전문성은 평가절하될 수 있음) | +/− (상쇄 효과로 불분명) | 불분명 |
출처: 저자 분석.
생산성과 임금. 이전 기계와 비용은 같지만 두 배 빠르게 작동하는 새 기계는 반드시 생산성을 높이고 대개 가격을 낮추는데, 이 둘 다 총량적 편익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가격 효과 때문에 노동자 소득에 미치는 순효과는 불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케이블 설치 가격이 산출 증가보다 빠르게 하락한다면(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케이블 설치 노동자의 임금은 하락한다.8 이러한 불분명함 때문에 우리는 자본 증강 기술을 명백히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분류하지 않는다.
전문성과 노동소득분배율. 노동 증강 기술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자본 증강 기술은 자동화를 통해 기존 형태의 전문성을 불필요하게 만들지도 않고, 새로운 과업 창출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전문성을 중요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과업 분담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은 노동소득분배율에 대체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경제라는 파이를 키우되, 자본과 노동에 돌아가는 몫의 상대적 크기는 바꾸지 않는다.
노동 증강 기술이나 자본 증강 기술과 달리, 자동화 기술은 예전에 노동자가 수행하던 과업을 기계나 알고리즘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분업을 직접 재편한다(Acemoglu and Autor 2011; Acemoglu and Restrepo 2018, 2019; Autor, Levy, and Murnane 2003 참조). 예컨대 상업용 건설 현장에서 전기 케이블을 자율적으로 설치하는 정교한 로봇의 도입을 생각해 보라. 이 기계는 노동자(또는 기계)가 이미 수행하는 과업을 증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노동자가 수행하는 과업을 주로 넘겨받는다.
생산성, 전문성, 임금. 자동화는 인간 노동을 더 값싼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인다. 그러나 동시에 전문성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임금을 깎아내릴 수 있다.9 자동화가 임금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첫 번째 경로는 노동 수요의 감소다. 로봇 자동화가 가격을 낮추어 케이블 설치 수요가 치솟더라도, 그 일을 하는 데 더 이상 전기기술자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두 번째 경로는 전문성의 상품화다. 전문화된 숙련을 값싼 자동화 공정으로 대체함으로써, 자동화 기술은 전문성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예컨대 로봇이 등장하기 전 전기 케이블 설치에 전문화된 전문성과 인증이 필요했다면, 그 능력을 자동화하는 것은 그 전문성의 경제적 가치를 줄이거나 없앤다.10 구체적으로, 케이블 설치 노동자가 다음에 어떤 일을 하든, 케이블 설치에 관한 그들의 전문성은 거의 쓸모도 경제적 가치도 없게 된다. 반대로 케이블 설치가 전문성이 필요 없는 과업이어서 몇 시간 만에 쉽게 익힐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 과업을 자동화해도 상품화되는 전문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자동화가 과업을 대체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과업을 대체하는지도 중요하다(Autor and Thompson 2025b). 모든 자동화는 노동을 절약하지만, 전문화된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업에서 노동자를 밀어내는 자동화에는 추가 비용이 따른다. 바로 그 특정한 인간 전문성의 축적을 쓸모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 구별은 실천적 함의가 있다. 노동자들은 전문성을 밀어내는(상품화하는) 자동화와 단지 노동을 절약하는 자동화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은 지난 50년에 걸쳐 두 차례 큰 자동화 물결을 겪었다. 전통적 컴퓨팅(예: 워드프로세싱과 편집 도구)과, 더 최근의 AI다. 첫 번째 기술은 환영받았고, 두 번째 기술은 2023년의 장기간에 걸친 작가조합 파업을 포함해 저항에 부딪혔다. 워드프로세서와 AI가 모두 자동화 기술임을 생각하면, 시나리오 작가들이 둘 다 저항했으리라고 순진하게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의 관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워드프로세서는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집필 전문성을 더 효율적으로 발휘하도록 돕는다. 단지 노동을 절약할 뿐이다. 반면 AI는 그 전문성을 값싼 상품으로 바꿔 버릴 위험이 있다. 결국 시나리오 작가는 글을 쓰는 데 들인 시간이 아니라 이야기를 빚어내는 전문성에 대해 보수를 받으며, 바로 그 전문성을 AI가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11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동화에는 비용과 편익이 함께 있다. 생산적인 자동화 기술은 대개 가격을 낮추거나 (계속 고용된 사람들의) 임금을 올리거나, 또는 둘 다를 해낸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생계를 의지하는 전문성을 밀어내는 자동화는 경제의 다른 곳에서 수혜자를 만들어 내면서도, 전문성의 가치가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거의 언제나 집중된 비용을 안긴다.
노동소득분배율. 임금에 미치는 이러한 불분명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자동화는 과업을 노동자에게서 기계로 재배분함으로써 해당 부문에서 부가가치 중 노동의 몫을 명백하게 줄인다. 이 재배분 효과는 개별 활동(예: 전기 설치) 수준에서는 대체로 사소한 문제이지만, 지난 20년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그랬듯이 경제 전체의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할 때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Karabarbounis 2024).
앞의 세 기술 범주는 노동자 친화적이라는 우리의 정의를 충족하지 못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이 기술들은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지도, 기존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을 반드시 더 가치 있게 만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은 두 가지를 모두 해낸다. 자동화 기술과 정반대로, 이 기술은 새로운 인간 전문성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
전기 설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이더넷 네트워크, 광섬유 케이블, 재실 인식형 냉난방·조명 시스템 같은 혁신은 현대의 건물에 필요한 전기 케이블의 양과 복잡성을 크게 늘렸다. 이 복잡성에 걸맞게, 노동자는 이제 이러한 시스템을 계획하고 설치하고 유지하는 데 전문화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는 그 기술들이 도입되기 전에는 쓸모도 없었고 흔하지도 않았던 전문성이다.
생산성, 전문성, 임금. 새로운 과업은 인간이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며, 구체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전문성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보려면, '새로운 일(new work)'과 '더 많은 일(more work)'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Acemoglu and Restrepo 2018, 2019; Autor et al. 근간). 많은 경제적 힘이 '더 많은 일', 즉 노동자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의 양적 증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이 남다른 것은, 새로운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곧 '새로운 일')을 더하고, 전문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일자리로 노동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점이다. 수십 년에 걸쳐 새로운 일의 유입은, 자동화가 그러지 않았다면 깎아냈을 전문성에 대한 수요를 다시 채워 넣는다. 양적으로 이 효과는 크다. 최근 연구는 2018년 노동자 10명 중 6명이 넘는 수가 1940년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던 직업 전문 분야에 고용되어 있었다고 추정한다(Autor et al. 2024).
위에서 논의한 다른 기술 범주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도 생산성을 높인다. 다만 같은 일을 더 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요를 충족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노동 증강 기술이나 자본 증강 기술과 달리, 이 기술은 요구되는 일의 종류와 양을 모두 반드시 늘린다. 자동화 기술과 달리, 이 새로운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의 가치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12
물론 모든 새로운 전문성이 똑같은 경제적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2000년에서 2024년 사이 아마존닷컴(Amazon.com)은 150만 개가 넘는 새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그 대다수는 물류, 즉 창고 작업과 배송이었다(Prakash 2025). 이 일은 아마존 창고 피커처럼 독특한 직종을 낳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이라 할 만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전문성은 이미 풍부하거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일은 '새로운 일'보다 '더 많은 일'에 가까웠고, 그 보수도 그에 걸맞게 낮았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아마존 물류 일자리의 상당수가 이제는 그 자체로 자동화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아마도 전문성 수준이 낮았던 탓에 다음 물결의 창고 자동화에 취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Weise 2025).
노동소득분배율과 전문성. 자동화 기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도 분업을 바꾼다. 그러나 자동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바꾼다. 기계가 아니라 노동자가 수행하는 과업의 범위를 넓히고, 그리하여 부가가치 중 노동의 몫을 높인다. 요구되는 노동자의 수를 늘리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 전문성을 가치 있게 만들며, 경제 활동에서 노동의 몫을 늘림으로써, 이 기술들은 명백하게 노동자 친화적이다.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여 노동자의 숙련과 전문성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아래의 논의에서 강조하듯이, 새로운 전문성이 반드시 더 높은 학위를 요구하는 첨단 기술 일자리가 더 많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성은 대졸 학력의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일자리 못지않게 블루칼라 노동, 의료 서비스 제공, 대인 서비스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노동자 친화적 AI가 전통적인 화이트칼라 일보다 이러한 비학위 일자리에서 잠재력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아래의 사례들이 그 이유를 분명히 보여 줄 것이다.
새로운 과업을 창출하는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구별되는 것이, 예전에는 다른 영역의 전문성을 요구하던 과업을 새로운 노동자 집단이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맥박 산소측정기를 갖춘 의료기사는 환자의 혈중 산소 수치를 빠르게 읽어 낼 수 있다. 이 도구가 나오기 전에는 같은 과업에 채혈을 위한 채혈사, 그 혈액을 분석하는 검사실 기사, 그리고 결과를 해석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 기술은 새로운 과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단지 의료기사가 기존 과업을 새롭게 수행할 수 있게 했을 뿐이다.
생산성, 전문성, 임금, 노동소득분배율. 전문성 평준화 기술은 대개 비용을 줄임으로써 생산성을 높인다. 기업은 거의 언제나 더 낮은 비용에서 이득을 보지만, 전문성 평준화 기술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보통 엇갈린다. 전문성이 덜한(대개 보수가 더 낮은) 노동자의 실질 역량을 확장함으로써, 전문성 평준화 기술은 흔히 이 노동자들의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따라서 그들의 소득 능력을 높인다.
같은 이유로, 전문성 평준화 기술은 예전에 이 과업을 수행하던 사람들의 희소성 가치를 대개 떨어뜨린다. 다만 이 후자의 노동자들이 이제 자신의 시간을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업(예: 의사가 더 복잡한 사례의 진단에 집중하는 것)에 배분할 수 있다면 예외다. 서로 다른 노동자 집단에 미치는 이러한 상쇄 효과 때문에, 전문성 평준화 기술은 노동소득분배율에 불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전체적으로 이 기술이 노동자 친화적인지 아닌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기술 변화의 방향, 구체적으로 자동화와 새로운 과업 창출 사이의 균형은 임금뿐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광범위한 사회적 결과 때문에도 중요하다. 지난 50년간 미국은 두 차원에서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을 경험했다. 학력 수준과 인구 집단에 따른 노동자 간 임금 격차의 확대,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 소유자 사이의 격차 확대다(Acemoglu and Restrepo 2022; Piketty, Saez, and Zucman 2018).
자동화는 두 추세를 모두 악화시킨다. 자동화는 특정 노동자 집단을 그들의 과업과 일자리에서 밀어냄으로써 노동시장 불평등을 키운다. 예컨대 로봇이 도장·용접·분류 작업에서 숙련 블루칼라 노동자를 대체하는 식이다. 또한 자동화는 부가가치 가운데 자본에 돌아가는 몫을 키움으로써 전반적인 불평등을 키운다. 자본 소유는 노동소득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므로, 자본의 몫을 키우는 어떤 힘이든 최상위 가구와 나머지 모두 사이의 격차도 벌린다. 그리고 부의 집중 심화는 다시 민주적 거버넌스의 질과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Acemoglu and Robinson 2019).
한편 고용과 임금의 급격한 하락은, 그것이 기술 때문이든 무역 때문이든 다른 경제적 충격 때문이든, 노동시장을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 결과를 동반한다. 일자리 상실은, 특히 특정 지역사회에 집중될 때, 조기 사망, 가족 해체, 약물 남용을 부추긴다(Autor, Dorn, and Hanson 2019; Black, McKinnish, and Sanders 2003; Case and Deaton 2022; Sullivan and Von Wachter 2009; Wilson 2011). 이와 달리 새로운 과업을 창출하는 기술은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높임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도전을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위에서 논의한 다섯 가지 기술 변화는 모두 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이 크지만,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은 노동자에게도, 노동시장 전반에도 추가적인 미덕을 지닌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정의하는 노동자 친화적 AI는 새로운 과업 창출 기술이다.
위에서 자세히 살펴본 기술 범주들은 모두 가깝고 먼 역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자동화는 유독 눈에 띈다. 초기 영국 산업혁명의 획기적 기술 가운데 상당수는 자동화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방적에서, 그다음에는 방직에서였다. 사무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스템, 컴퓨터 수치제어(CNC) 기계, 산업용 로봇은 지난 60년간 기술 발전의 최전선에 있었다. 이 기술들은 쓰임새가 많지만, 그중 한 가지는 예전에 공장 현장과 사무실에서 노동자가 수행하던 핵심 직무 과업을 자동화한 것이다.
자동화의 역할은 제조업에서 특히 뚜렷하다. 미국 제조업에서 부가가치 중 노동의 몫은 1981년에서 2016년 사이 74퍼센트에서 46퍼센트로 떨어졌고, 미국 국민소득에서 노동의 몫도, 그만큼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58퍼센트에서 52퍼센트로 떨어졌다(Acemoglu 2026). 자동화는 제조업 내부에서도, 미국 경제 전반에서도 부가가치 중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과 관련되며, 국제적 증거도 이 양상과 일치한다(Acemoglu and Restrepo 2022; Restrepo 2024; Acemoglu, Kong and Restrepo 2025 참조). 또한 여러 연구는 기계가 넘겨받을 수 있는 정형 과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자동화가 어떻게 밀어냈는지를 보여 주었다(Acemoglu and Restrepo 2020; Autor, Levy, and Murnane 2003).
그러나 자동화가 전부는 아니다. 제조업에서 상업으로, 다시 금융으로 이어진 자동화의 빠른 행진을 생각하면, 1700년대 후반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노동의 몫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예상했을 법하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국과 비슷한 나라들에서 노동의 몫은 20세기의 첫 80년 동안 증가했다. 비록 지난 40년 동안은 하락했지만 말이다(Budd 1960; Abramovitz and David 2000; Autor et al. 2020; Acemoglu 2026).
역설을 더하자면, 부유한 산업화 국가들은 더 폭넓은 자동화와 더 많은 자본 부를 갖고 있는데도 저소득 개발도상국보다 노동소득분배율이 상당히 높다(그림 1 참조). 더 발전한 기술과 더 많은 자동화가 반드시 더 낮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뜻한다면, 우리는 그 반대를, 즉 부유한 나라에서는 노동의 몫이 더 낮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더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자동화는 왜 노동의 몫을 끊임없이 0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자동화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워낙 크게 높여서 임금 상승이 자동화의 노동소득분배율 잠식 효과를 상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능성이 낮다. 자동화가 반드시 임금을 낮추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의 몫은 낮추기 때문이다. 예컨대 산업혁명기에 제니 방적기와 수력 방적기 같은 면방적의 주요 기술 발전은 면사(yarn) 생산의 노동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더 적은 노동자가 더 많은 기계를 써서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면사를 생산할 수 있었다. 생산성이 높아지자 가격이 낮아졌고, 이는 다시 (늘어난 면사 산출량을 쓰기 위해) 필요한 직조공의 수를 늘렸다. 그러나 직물 생산의 분업이 기계 쪽으로 결정적으로 옮겨 갔으므로, 이것만으로는 노동의 몫이 회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기술 발전은 결국 직조공에게도 경제적으로 혹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Joel Mokyr)와 동료들이 2015년에 쓴 대로, "작은 작업장을 갖춘 수직기 직조공과 편물공은 1815년 이후 공장에 의해 상당히 빠르게 쓸려 나갔다"(Mokyr, Vickers, and Ziebarth 2015). 19세기 초 수십 년 동안 직조공의 소득은 무려 3분의 2나 떨어졌다(Acemoglu and Johnson 2024). 직물 공장은 숙련 직조공 대신, 주로 도제 계약(indentured)을 맺은 아동과 미혼 여성을 고용해 오염되고 흔히 끔찍하게 위험한 환경에서 전문성이 필요 없는 저임금 노동을 시켰다. 이것이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1804년 시에 나오는 "어둠의 사탄의 공장(dark Satanic Mills)"이다.
엄청나게 높아진 생산성은 왜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만약 직물 공장이 숙련 방적공이나 직조공만이 공급할 수 있는 희소하고 전문화된 전문성을 필요로 했다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손놀림이 빠른 손가락과 불편함을 잘 견디는 능력이 유일한 숙련 요건이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심지어 아동들까지도, 이러한 비전문적 능력을 넘치도록 공급했다.
산업화된 경제에서 자동화가 노동의 역할을 더 잠식하지 않은 두 번째 설명은, 자동화의 간접 효과가 직접 효과를 상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산업화는 일부 노동자에게는 전문성이 필요 없는 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 냈지만, 동시에 기계 설계·설치·정비처럼 전문성이 많이 필요한 다른 활동에서 새로운 수요를 간접적으로 창출했다(Goldin and Katz 1998; Katz and Margo 2014).
출처: Our World in Data 2020.
이 가설은 분명 옳다. 한 영역에서 전문성의 필요를 없애는 자동화는 흔히 다른 영역에서, 그것도 흔히 그 자동화 기술을 공급하는 부문에서 새로운 전문성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간접 경로의 중요성은 정량화하기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증거를 보면, 부문을 가로질러 작동하는 간접 효과의 기여는 비교적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Acemoglu and Restrepo 2019; Autor and Salomons 2018).
자동화의 영향을 상쇄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연 새로운 전문 과업의 동시적 창출이다. 19세기에 영국의 임금은 결국 올랐고 노동의 몫은 회복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제조업의 더 기술적인 일, 경제 평균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한 철도, 그리고 새로운 사무·회계 직책 같은 새로운 과업 덕분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과업이 마침내 임금을 성장시키고 노동의 몫을 회복시켰다(Acemoglu and Johnson 2023; Allen 2009). 20세기 내내 새로운 과업은 대체로 새로운 노동 수요를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Lin(2011), Autor(2015), Acemoglu and Restrepo(2018), Autor et al.(2024, 2025), Acemoglu, Kong and Restrepo(2025)가 기록한 바와 같다.
그러나 새로운 과업 창출이 전반적으로 노동자 친화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동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노동자에게 이득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40년 동안 새로운 전문 일의 유입은, Autor et al.(2024)의 그림 2가 보여 주듯이, 직업 분포 전반에 걸쳐 기존 일의 분포를 대체로 그대로 재현했다.
출처: Autor et al. 2024. 주: 각 패널은 학력 집단과 시기별로, 새로운 일에서의 고용 비중과 기존 일에서의 고용 비중의 차이를 12개 직업 범주에 걸쳐 나타낸다. 직업 범주는 임금이 낮은 순에서 높은 순으로 배열했다.
1940년에서 1980년 사이 제조업과 사무 노동에서 자동화가 가속되면서, 수치제어 가공 같은 숙련 공장 노동과 속기사·구술녹음기 조작원 같은 숙련 사무 노동의 새로운 형태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다음 40년 동안 새로운 과업 창출의 흐름은 이러한 활동에서 빠져나갔다. 1980년 이후 자동화로 밀려난 일의 상당 부분은 생산직, 기계 조작직, 사무직, 행정직이었다. 그러나 이 수십 년 동안 새로 나타난 일의 상당수는 전문직, 기술직, 관리직, 즉 흔히 훨씬 더 많은 정규 교육을 요구하는 일자리였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대체로 자동화로 밀려난 비대졸 노동자에게 새로운 경로를 열어 주지 않았다.
※ 본 번역은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 Brookings Institution)가 2026년 2월 발간한 정책 보고서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Daron Acemoglu, David Autor, Simon Johnson)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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