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노동자 친화적 인공지능 구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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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노동자 친화적 인공지능 구축 (상)

이명규 0 364 05.18 16:35

번역 게재 · (상)

노동자 친화적 인공지능 구축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다론 아제모글루(Daron Acemoglu) ·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 ·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 브루킹스 연구소, 2026년 2월


옮긴이의 말

왜? 한국의 AI 논의는 빠르고 거세지만 한쪽이 비어 있다. 산업 진흥, 모델 경쟁, 규제 정비는 매일 이야기되지만 "AI를 어떻게 노동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라는 물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줄이는 AI는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받아들여지고, AGI(범용인공지능)는 도달해야 할 정점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같은 AI 기술이라도 어떻게 설계·배치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숙련을 깎아내릴 수도, 더 가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분기점을 정면으로 다루며, 한국 AI 논의에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시각, 곧 "노동자 친화적 AI(Pro-Worker AI)"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들여온다.

저자: 세 명의 MIT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글루(Daron Acemoglu)와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은 2024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다. 두 사람은 공저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에서 기술 발전이 자동으로 번영을 가져오지는 않으며, 그 방향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결정적이라는 점을 논증한 바 있다.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는 노동시장 양극화, 자동화, 이른바 '중국 충격(China shock)' 연구로 잘 알려진 노동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다. 셋 모두 MIT 소속이며, 기술과 노동에 관한 오늘날 경제학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흐름을 대표한다.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산하 경제정책 기구로,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념이 아닌 증거에 기반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이 글은 해밀턴 프로젝트가 2026년 2월 발간한 정책 보고서로, "노동자 친화적 AI"의 이론적 틀과 구체적 정책 방안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첫 번째 문서다. 본 번역은 분량을 고려해 세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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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AI의 노동자 친화적 잠재
Ⅰ. 무엇이 기술을 노동자 친화적으로 만드는가?
Ⅱ. 노동자 친화적 AI를 위한 우리의 개념적 틀
A. 전문성의 가치
B. 기술은 숙련과 전문성의 가치를 어떻게 재편하는가
C. 기술 변화의 방향이 왜 중요한가
D. 자동화가 전부는 아니다
Ⅲ. 현장에서의 노동자 친화적 AI
Ⅳ. 노동자 친화적 AI의 구체적 사례
A. 전기기술자 보조 도구
B. 서비스 노동자 보조 도구
C. 교사의 AI 조력 도구
D. 특허 심사관을 위한 의사결정 지원
E. 청각 보조 AI(Hearing AIds)
Ⅴ. 노동자 친화적 AI는 왜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A. 노동자 친화적 기술의 반대는 무엇인가?
B. 시장 실패란 무엇인가?
Ⅵ. 노동자 친화적 AI를 향해 나아가기
A. 의료와 교육에서 노동자 친화적 AI 형성하기
B. 정부 내 AI 전문성 구축하기
C. 보조금 지원으로 가치 있는 AI 투자 뒷받침하기
D. 우수성을 위한 경쟁 촉진하기
E. 조세 제도에서 기울어진 투자 유인 바로잡기
F. 민간 부문 경쟁 촉진하기
G. 노동자 발언권 활용하기
H. 전문성 도용 억제하기
I. 면허 규제 완화하기
결론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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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인공지능을 포함한 노동자 친화적 기술(pro-worker technologies)을, 노동자의 역량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기술로 정의한다. 우리의 개념적 틀은 기술 변화를 다섯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노동 증강(labor-augmenting), 자본 증강(capital-augmenting), 자동화(automating), 전문성 평준화(expertise-leveling), 그리고 새로운 과업 창출(new task-creating)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범주만이 명백하게 노동자 친화적이며, 인간의 전문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전문성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우리는 항공기 정비, 전기 서비스, 시설 관리 업무, 교육, 특허 심사, 플랫폼 기반 배달에 이르는 가상의 사례와 실제 사례를 통해 이러한 구분을 보여 준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하는 역량은 상당하지만, 우리는 AI가 인간의 판단을 확장하고 새로운 과업을 가능하게 하며 숙련 습득을 가속하는 협력자로 기능할 잠재력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변혁적이며 현재로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기업과 개발자의 어긋난 유인, 경로 의존성, 그리고 만연한 자동화 우선 이념 등 노동자 친화적 AI에 대한 체계적인 과소투자를 낳는 시장 실패를 규명한다. 우리는 의료와 교육에 대한 표적 투자, 조세 제도 개혁, 반독점 집행, 노동자 전문성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 유인을 재편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정책 방향을 검토한다.

서론

인공지능(AI)에 대한 흔한 우려 한 가지는 그것이 노동시장에서 인간을 대체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관론은 이해할 만하다. AI는 흔히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자동화 기술로 일컬어진다. ChatGPT를 만든 오픈AI(OpenAI)는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대부분의 업무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고도로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정의한다(OpenAI n.d.). AGI 달성은 오픈AI를 비롯한 여러 선도적 AI 기업의 헌장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AI가 —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 고객 서비스, 마케팅, 운전, 외국어 번역, 코딩, 의료 진단, 그리고 삽화·애니메이션·글쓰기 같은 무수한 창의적 과업에서 핵심 역할을 자동화한다면, 이는 많은 노동자가 생계를 의지하는 숙련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그 충격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결과는 중대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시장 불평등은 지난 45년에 걸쳐 이미 급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비대졸 노동자의 미약한, 일부 시기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실질임금 증가, 그리고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노동소득분배율)과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의 상당한 하락과 함께 나타났다(Acemoglu 2026). 미국의 불평등 심화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산업화된 세계의 상당 부분도 비슷한 추세를 겪었다. 즉 소득 불평등의 확대, 비대졸 노동자의 정체된 소득 수준,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이다(Acemoglu and Johnson 2023). 이제 정책 입안자, 학자, 기술자, 사회 평론가 사이에서는 AI 시대가 이러한 우려스러운 추세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퍼져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추세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AI를 건설적으로 활용하여 노동시장 기회를 넓히고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다. 우리는 이 방향을 "노동자 친화적 AI"라고 부른다. 우리는 AI를 포함한 노동자 친화적 기술을, 노동자의 역량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기술로 정의한다.

노동자 친화적 기술에 대한 우리의 정의는 표면적으로는 무난해 보인다. 인간 전문성의 가치가 높아지기를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정의가 실제로는 보기보다 까다로워, 많은 기술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이 정의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술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기술이 왜 소득·불평등·기회의 측면에서 노동시장에 추가적인 상충(trade-off)을 일으키는지도 함께 설명할 것이다. 노동자와 사회 전반에 이로운 기술을 찾아내고 키우며 거기에 투자하려는 것은 많은 기술자, 정책 입안자, 노동자 대표, 그리고 대중이 공유하는 목표다. 이를 고려하면, 노동자 친화적 AI를 정의하고 그 발전을 어떻게 진전시킬지 알아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우리는 본다.

이 글에서 우리는 노동자 친화적 AI가 일자리·임금·노동자 전문성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것이 왜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민간 시장이 왜 노동자 친화적 AI에 과소투자할 가능성이 높은지, 그리고 이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AI의 노동자 친화적 잠재력

AI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노동자를 대체하는 역량은 상당하다. 동시에 우리는 AI가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할, 그에 못지않게 변혁적인 잠재력을 지닌다고 믿는다. 이 잠재력은 AI가 노동자와 협력하는 역량에서 비롯되며, 이를 통해 노동자는 (a) 자기 직무와 관련된 더 정교한 과업을 수행하고, (b) 새로운 과업에 도전하며, (c) 새로운 전문성을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다중모드(multimodal) 협력 역량이야말로 AI를 노동자 친화적 기술로서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 협력 역량은 어디에서 오는가? 현대 AI가 등장하기 전, 전통적 컴퓨팅의 강점은 명확하게 규정된 규칙을 따라 정형(routine)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능력이었다. 덕분에 전통적 컴퓨팅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미리 정해진 동일한 절차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면 되는 이러한 업무의 자동화에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았다(Autor, Levy, and Murnane 2003).

그러나 컴퓨터 혁명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인간 노동은 기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재량과 즉흥성, 판단을 요구한다. 이는 미리 정해진 규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바로 그 순간에 필요한 능력이다. 예컨대 암 환자를 돌보거나, 법률 의견서를 작성하거나, 주방을 개조하거나, 수업 계획을 짜는 데에는 단 하나의 최선의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업의 상당수에서는 인간의 숙련과 판단, 창의력이 결과를 좌우하며, 때로는 그 영향이 극적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곧 판단을 발휘하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가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AI는 미리 짜인 절차에 의존하는 대신, 사례를 통해 학습하고, 비정형 정보를 종합하며, 명시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능력까지 습득한다. 인간 전문가처럼 AI는 형식적 지식(규칙)과 축적된 경험을 엮어, 일회적이고 위험 부담이 큰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지원할 수 있다.

비정형 데이터로부터 지식을 통달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이 역량 덕분에, AI는 의사결정자의 업무를 조언하고 지도하고 지원하며 향상시키는 더없이 귀중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곧 의사결정자다. 전통적 컴퓨팅은 노동자가 판단·재량·즉흥성이라는 불확실한 영역에 뛰어들어야 할 때 그 문턱에서 멈춰 섰지만, AI는 노동자와 함께 그 영역으로 들어가 업무를 조언하고 지원하고 지도하며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기계 협력은 기계의 역량이 인간 전문성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될 때 존재하며, 이는 기계를 사용해 인간의 능력을 자동화함으로써 인간의 전문성을 불필요하게 만들려는 훨씬 더 흔한 구상과는 구별된다(Autor and Manyika 2025). 협력의 목표는 전문성을 통째로 자동화하거나,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기계에 넘기거나, 인간이나 AI 어느 한쪽이 반드시 더 뛰어나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판단을 빠르게 발전하는 연산 능력과 결합하여 더 우월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인간-기계 협력이라는 발상은 컴퓨팅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MIT의 컴퓨터 과학자 J.C.R. 리클라이더(J.C.R. Licklider)는 1960년의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두뇌와 컴퓨팅 기계가 매우 긴밀하게 결합되어, 그 결과로 생겨난 협력체가 지금껏 어떤 인간의 두뇌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정보 처리 기계가 도달하지 못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 구상은 60년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포부였다. 그러나 현대의 AI가 이 셈법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의 AI 시스템은 농장의 모든 면적에서 수집한 드론 영상과 토양 센서 데이터, 건물 냉난방·환기(HVAC) 시스템의 전체 센서 기록, 또는 여러 달에 걸쳐 관찰한 한 환자의 상세한 활력 징후를 입력받아, 노동자가 위험 부담이 큰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전 학습을 바탕으로 AI 도구는 노동자와 함께 사고하고, 관련 맥락을 식별하며, 질문에 충분한 근거를 갖춘 답변을 내놓고,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명료하고 잘 짜인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협력이다.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다. "AI가 전문가처럼 행동할 수 있다면, 그냥 전문가를 대체해서 그들의 전문성을 무의미하게 자동화해 버릴 수 있지 않은가?" 일부 경우에는 그렇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본다. AI는 자동화보다 협력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다. AI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자율적 행위자로서는 전통적인 컴퓨터 시스템보다 신뢰성이 낮지만, 협력자로서는 더 가치가 크다(Narayanan and Kapoor 2025).

자동화 도구가 쓸모 있으려면 거의 항상 흠잡을 데 없는 성능을 내야 한다. 값을 환각으로 지어내는 스프레드시트, 우회 수술 도중 오작동하는 로봇 외과의, 사용자가 한눈판 사이 돈을 날리는 에이전트형 투자 도구, 또는 설득력 있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플레이스테이션을 공짜로 내주고 살아 있는 물고기를 채워 넣는 AI 자판기를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Stern 2025). 이런 과업의 대부분은 결과의 무게가 너무 크고 판단이 너무 미묘해서, 스스로 재량껏 행동하는 자동 시스템에 통째로 맡길 수 없다. 그 AI에는 인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협력 도구는 쓸모가 있으려고 완벽에 가까울 필요가 전혀 없다. 청진기를 든 의사는 청진기가 없을 때보다 환자를 더 잘 진단할 수 있고, 레이저 수평기를 쓰는 시공업자는 눈대중으로 할 때보다 더 반듯하게 집의 골조를 세울 수 있다. 이러한 도구는 사용자의 전문성을 대체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기 때문에 흠 없이 작동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전문가가 자기 일을 더 잘하도록 돕고, 도움 없이는 닿을 수 없던 곳까지 전문성을 넓혀 준다. 전문성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와 범위를 넓혀 전문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우리는 기계의 역량과 인간 전문성 사이의 이러한 보완성이 AI에 막대한 노동자 친화적 잠재력을 부여한다고 본다.

분명히 해 두자면, 자동화는 부도덕하거나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동화는 산업혁명 초기부터 우리와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기술이 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로 남을 것이다. 가까운 과거만 해도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거나, (당뇨 환자에게 꼭 필요한) 혈당을 측정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했고, 그래서 이런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번거롭거나 비싸거나 아예 불가능했다. 이제 자동화는 이런 과업을 값싸고 거의 힘들이지 않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었다.

앞으로도 현재 인간의 판단이나 손재주, 맥락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많은 과업은 자동화의 좋은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교육자, 의료 종사자, 숙련 기능직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직종의 핵심 과업은 이러한 설명에 들어맞지 않으므로, 적어도 현재로서는 완전 자동화에 적합하지 않다. 다만 이런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더 나은 기술로부터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래에서 주장하듯이, AI가 제공하는 기회는 주로 이 일을 자동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협력자로 기능하는 데 있다.

다음 절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 경로를 제시함으로써 무엇이 기술을 노동자 친화적으로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이 틀을 적용하여, 이미 현장에 나와 있는 노동자 친화적 AI의 유망한 사례 몇 가지를 논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 친화적 AI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첫 번째 이유는 유인이다. 선도 기업들은 새로운 과업이나 노동자를 창출하고 숙련과 전문성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보다, 전문성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는 데서 더 큰 경제적 수익을 기대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이데올로기다. 컴퓨터 과학은, 그리고 AI 공동체 전반은, 기술적이고 고도로 정량적인 분야임에도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 즉 AGI를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로 삼는 이데올로기적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경제학자이지 철학자가 아니므로, 한 과학 분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 그러나 AI의 개발과 배치를 노동자 친화적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1

Ⅰ. 무엇이 기술을 노동자 친화적으로 만드는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같은 목표에 쓰이더라도 AI를(또는 어떤 기술이든) 활용하는 접근 방식이 다르면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에 미치는 함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단순화된 사례를 제시한다.

우리의 사례는 항공기 및 항공전자장비 정비사·기술자(Aircraft and Avionics Equipment Mechanics and Technicians, AMT)라는 직종에 관한 것이다. 2024년 미국에는 16만 1,000명의 AMT가 있었고, 중위 임금은 7만 9,000달러였다(Bureau of Labor Statistics[BLS] 2025b). 같은 해 델타항공의 기술운영 부문 한 곳만 해도 전 세계 51개 정비 기지에서 9,600명의 AMT를 고용했다(Wikipedia 2025). AMT가 되려면 특정 직업훈련과 연방 인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AMT는 군에서, 또는 연방항공청(FAA)이 승인한 항공정비기술자 양성 과정을 이수하면서 경력을 시작한다. 승인된 과정을 마치면 FAA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기며, 이 시험을 통과해야 인증을 받는다. 인증을 받지 않은 AMT는 FAA 시험에 응시할 만큼 경험을 쌓을 때까지 인증된 기체·동력장치 정비사(Airframe and Powerplant Mechanic)의 감독 아래 일한다(FAA n.d.a).

항공사는 점검·정비·수리 작업을 가능한 한 신뢰성 있게 비용 효율적으로 운영할 강한 유인을 가진다. 다음에서는 항공사가 이러한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입할 만한 가상의 AI 도구 세 가지를 제시하고, 각각이 함의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한다.


  • 항공정비 자동화 도구(Aviation Maintenance Automator, AMA). 이 AI 도구는 항공기 정비를 "드라이버를 쥘 줄 아는 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어 준다고 주장한다. 안전모에 장착한 카메라, 마이크, 라이다, 열 감지 장비를 갖춘 AMA는 인증받지 않은 기술자라도 항공기를 점검·정비하도록 안내한다. AMA 개발자의 장기 목표는 마지막 단계의 물리적 작업까지 수행하는 정교한 로봇으로 노동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여전히 기술자가 필요하다. 다행히 이 노동자들에게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고, 기본적인 기계 공구를 다루는 능력과 지시를 성실히 따르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 AMT 보조 도구(AMT Assistant). 이 도구 역시 상업용 항공기를 정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자를 돕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AMA 자동화 도구와 달리, AMT 보조 도구와 함께 일하는 기술자는 단순한 일손 그 이상이며 경험과 훈련도 갖춰야 한다. 다만 AMT 보조 도구는 기술자의 역량을 확장한다. 기술자는 정비고에서 진단 데이터, 사진, 현장 기록을 업로드할 수 있다. AMT 보조 도구는 이 정보를 분석하고 보충 질문을 던지면서 어떤 검사를 하고 어떤 절차를 적용할지 권고한다. 또한 규제 준수 사항을 조언하고, 필요한 서류 작업을 완성하며, 항공기가 다시 운항 가능한 상태가 되는 시점을 실시간으로 예측해 준다. AMT 보조 도구는 기초 공학 지식, 관련 항공기 기종 전체의 기술 정보, 그리고 숙련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마주친 방대한 사례 모음으로 사전 학습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AMT 보조 도구는 보충 교육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술자가 상호작용하며 풀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사용 사례를 생성함으로써, AMT 보조 도구는 기술자를 위한 비행 시뮬레이터처럼 기능한다. 현장 시험 결과, AMT 보조 도구를 쓰면 기술자가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더 비용 효율적인 수리를 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도구는 숙련 습득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AMT 보조 도구를 쓰는 기술자는 기존 도구와 교육 자원만 쓰는 기술자보다 더 빠르게 전문가 수준의 성과에 도달한다.

  • AMT 리프트오프(AMT Liftoff). AMT 보조 도구의 후속작인 이 도구는 항공기 정비기술자가 자신의 숙련을 빠르게 성장하는 우주비행 부문으로 전환하도록 돕는다. 이 부문에는 스페이스X(SpaceX),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nited Launch Alliance, 보잉사와 록히드마틴사), 블루 오리진(Blue Origin), 로켓 랩 USA(Rocket Lab USA) 같은 기업이 포함된다. 우주선의 점검·정비·수리는 빠르게 진화하고 기술적으로 까다로우며 임무상 결정적인 작업이어서 새로운 전문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AMT 보조 도구로 일해 본 사람을 포함한) 항공기 정비기술자는 그 위에 쌓아 올릴 만한 적용 가능한 기초 숙련을 갖추고 있다. AMT 리프트오프는 비행 시뮬레이터와 비슷한 기능을 활용해, 교육생이 여러 우주선에서 정비·진단·수리 작업을 실습할 수 있는 가상 실습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AMT 리프트오프의 가상 학습 환경이 직접적인 감독과 현장 경험을 온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이 도구는 학습 과정을 앞당기고, 교육생의 비용을 줄이며, 우주비행 부문에 진입하려는 AMT의 초기 진입 과정을 크게 단축한다. 기술자가 가상 환경에서 현장으로 옮겨 가면, AMT 리프트오프는 AMT 보조 도구와 마찬가지로 실시간 지원을 제공하여 문제 해결을 돕고 품질을 보장하며 학습을 앞당긴다.

이 세 가지 가상의 기술은 모두 항공우주선을 점검·정비·수리하는 핵심 과업을 돕는다. 그러나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첫 번째 기술인 항공정비 자동화 도구(AMA)의 궁극적 목표는 AMT 직무를 탈숙련화하는 것이다. 기술자는 자기 일을 지시하는 AMA의 눈과 손 노릇을 하는 데 그친다. 이러한 단순화가 기술자에게는 좋은 소식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일을 하는 데 훈련이 덜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더 낮은 소득을 뜻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 직무에 필요한 것이 기본적인 기계 숙련뿐이라면, 항공사로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숙련에 AMT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가령 정교한 로봇이 수작업 정비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게다가 항공사가 높아진 생산성을 고려해 정비기술자를 더 많이 고용하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AMT의 임금은 하락할 것이다. 요컨대 AMA는 값싼 기계 대체물을 제공함으로써 희소한 AMT의 전문성을 상품화하고, 그 숙련의 시장 가치를 깎아내린다.

AMT 보조 도구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 도구는 AMT의 전문성을 상품화하는 대신, AMT가 더 어려운 진단·수리 작업을 더 높은 품질과 더 큰 효율로 해낼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지식 기반을 확장한다. 또한 규제 준수 사항을 조언하고 서류 작업을 처리해 줌으로써, AMT 보조 도구는 AMT가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 도구는 특히 초급 AMT에게 유용한데, 보통은 훨씬 더 노련한 기술자에게만 맡겨지던 정교한 과업을 초급자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도구는 모든 기술자가 드문 문제를 다루거나 복잡한 고장 진단을 하는 등 새로운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기술이 어떻게 설계되고 개발되며 사용되는지의 세부 사항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 주듯이, AMT 보조 도구가 숙련 기술자에게 온전히 좋은 소식만은 아닐 수 있다. 이제 초급 AMT가 예전에는 자기들에게만 맡겨지던 일부 과업에서 숙련 기술자와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동시에 이는 두 종류의 도구를 분명히 구분해 준다. 하나는 노동자가 완전히 새로운 과업으로 뻗어 나가도록 돕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예전에 더 숙련된 동료에게 맡겨졌던 정교한 과업의 일부를 직접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다.

AMT 리프트오프는 AMT 보조 도구와 공통점이 많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도구는 노동자가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익혀야 할 전문 숙련도 빠르게 확장되는 미개척 영역을 익혀, 자신의 전문성을 진정으로 새로운 과업으로 넓힐 수 있게 한다. AMT 보조 도구처럼 이 도구도 노동자가 새로운 전문성을 습득하고 발휘하게 하지만, 그 대상은 해당 노동자에게만 새로울 뿐 이미 더 숙련된 노동자가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 아니라, 진정으로 참신한 과업이다.

이 사례들이 잘 보여 주듯이, 승자만 또는 패자만 만들어 내는 기술은 드물다. 첫 번째 기술은 인간의 전문성을 깎아내리지만, 항공사의 비용을 줄이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비용도 줄여 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기술은 노동자의 전문성을 확장하지만, 사용 방식에 따라 전문성의 공급을 늘릴 수도 있다. 이는 항공사와 소비자에게는 분명한 이득이지만, 기존 기술자에게는 경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세 번째 기술은 신규 진입자, 기업,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그리고 현재 이 과업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사실상 없으므로, 이 기술은 다른 노동자에게 경쟁 비용을 안기지 않는다.

다만 이는 이례적인 경우다. 몇 년 뒤면 오늘의 교육생이 내일의 기존 종사자가 된다. 그 시점이 되면 이들은 AMT 리프트오프 II가 신규 진입자를 더 빠르고 쉽게 유능한 항공우주 기술자로 만들어 준다는 데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우리에게 덜 걱정스럽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론적으로는 자유시장을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로는 경쟁을 싫어한다. 이는 노동자 친화적 AI로도 풀 수 없는 현실이다.

이 구체적 사례를 염두에 두고, 다음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숙련·전문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다 공식적으로 정리한 뒤, 그 실제 적용으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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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번역은 해밀턴 프로젝트(The Hamilton Project, Brookings Institution)가 2026년 2월 발간한 정책 보고서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Daron Acemoglu, David Autor, Simon Johnson)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분량을 고려해 세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허락을 받고 번역을 했으며, 원문은 https://www.hamiltonproject.org/wp-content/uploads/2026/02/20260223_THP_ProWorkerAI_Paper.pdf)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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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 (중) Ⅱ. 노동자 친화적 AI를 위한 우리의 개념적 틀 · Ⅲ. 현장에서의 노동자 친화적 AI · Ⅳ. 노동자 친화적 AI의 구체적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