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여섯 가지 신화
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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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4 12:00
별첨 파일은 민주노총이 10월 6일 개최하는 "비정규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할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여섯 가지 신화' 전문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노동사회" 2004년 11월호(통권 제93호) 47-65쪽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규직 노동시장, 과연 경직적인가?
⇒ 첫째, 한국의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는 안정적이지만, 세계 제1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랑하는 미국 노동자(정규직과 비정규직 포함)보다 고용 변동성, 노동시간 변동성, 임금 변동성 모두 높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극심한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정규직은 미국 노동자들보다 노동시간 상관성, 임금 상관성이 높다. 고용조정이 본격화될 때까지 2개월가량 시차가 존재할 뿐이다.
2. 비정규직 증가,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인가?
⇒ 비정규직 증가는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기업의 인사관리전략 변화, 노조의 조직률 하락 등 행위주체 요인에 기인하며, ‘노조 책임론’ 내지 ‘정규직 과보호론’은 사실이 아니다.
3. 비정규직 증가, 노동시장 경직성(정규직 고임금) 때문인가?
⇒ 노조 조직률이 증가하고 법정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비정규직 비율이 감소하지만, 정규직 임금인상은 비정규직 비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시장 경직성(제도) 때문에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기업 또는 시장의 횡포를 제어할 노동시장 경직성(제도)의 결여 때문에 비정규직이 증가했다. 정규직 임금인상은 비정규직 증가를 가져오지 않았다. 또한 '50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임금을 설명변수로 사용하더라도 정규직 임금은 유의미하지 않다. 따라서 “대기업 정규직 임금 인상 역시 비정규직 증가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4.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규직의 임금 양보와 고용 유연화가 선행되어야 하는가?
⇒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몫)이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취업자 대비 노동자 비중은 1998년 61.7%에서 2003년 65.1%로 증가했음에도,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3.4%를 정점으로 2003년 59.7%로 하락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간 것이 아니라, 기업주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을 떼어간 것이다.
실증분석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취업자 대비 노동자 비중과 노조 조직률이 증가하면 개선되고, 경제성장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하면 악화되며, 산업구조 변화와 실업률은 5% 유의수준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정규직 임금인상률과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은 전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성장론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물이 흘러넘치는 효과(trickle-down effect)로 소득분배 구조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성장 자체만으로는 소득분배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취업자 대비 노동자 비중이 증가하고, 노조 조직률이 제고되고, 비정규직 비율이 감소해야 노동소득분배율은 개선된다.
5. 비정규직을 늘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는가?
⇒ 비정규직 고용이 기업의 경영성과를 개선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제조업체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1990~97년) 12.6~14.0%에서 외환위기 이후(1998~2003년) 9.8~10.3%로 3~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률은 6.5~8.3%에서 5.5~7.4%로 감소했다. 더욱이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영업이익률과 인건비 비중 사이에 상관계수는 0.085이고, 영업이익률 증가와 인건비 비중 증가 사이에 상관계수는 0.198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6.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므로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야 한다?
⇒ 실증분석 결과 비정규직 비율과 실업률, 취업률 증가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는다.(상관계수 0.008과 -0.052) 비정규직을 늘린다고 해서 실업률이 감소하거나 취업률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정규직으로 옮아가는 징검다리(step) 노릇을 하기보다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함정(trap)으로 기능하고, 비정규직 취업 경험은 이후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할 가능성을 높이고 임금수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비정규직으로라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는 결코 청년실업 문제와 중소영세업체 인력난을 해결할 수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때만이 문제 해결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