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조합운동에 던져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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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동조합운동에 던져진 과제

노광표 4,119 2019.06.03 09:00
 문재인정부가 집권한지 벌써 2년이 지나갔다. ‘노동존중사회’를 노동공약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문대통령은 집권 초 인천국제공항 방문을 시작으로 노동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 쌍용차 등 장기투쟁사업장 해결 등 굵직한 노동공약을 한발 한발 실천하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노동존중사회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실천하였지만 현 정부의 고용·노동 분야의 긍정 평가는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노동정책에 대한 낮은 평가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비판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영계는 현실에 조응하지 않는 이상적인 노동정책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이 거꾸로 줄었다고 소득주도성장을 힐난한다. 노동계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초심을 잃고 기업 살리기의 하위 정책으로 포섭되었다고 비판한다. 
 
 집권 초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기업에 기울어진 왜곡된 노사관계의 균형을 바로 잡는 정책이었으나, 집권 1년이 지나면서 노동정책은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후퇴하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경제 민주화 등을 뚝심 있게 밀어 붙이지 못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그 책임을 온전히 정부에게만 돌릴 수 없다. 촛불혁명의 거센 흐름 속에 일시 퇴각하였던 자본과 수구언론 그리고 보수야당은 총 공세에 나섰다. 진보개혁 진영의 노동, 분배, 복지 담론은 성장론을 뛰어넘지 못하였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온 저임금노동의 해소라는 순기능은 자영업자와의 대립구도로 외화되는 역기능을 압도하지 못했다. 촛불정부를 탄생시킨 기층 민중과 문재인정부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고 갈등은 심화되는 반면 보수수구세력은 철 지난 성장담론으로 국민을 현혹한다.  
 
 이렇듯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은 분기점에 서 있다. 분배보다 성장론이 앞서고, 일자리 질보다 일자리 창출이 더 강조된다. 미중 무역전쟁과 하락하는 성장률, 일자리 창출의 악화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도 ‘원칙 없는 타협’은 과거로의 회귀일 따름이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들어섰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레임덕에 빠지고, 약속한 모든 개혁 입법들은 무위로 돌아간다. 정부 스스로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정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저임금 해소, 비정규노동의 축소 및 차별 해소,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노동기본권 보장, 사회보장 시스템 혁신 등은 갈등 없이 해결 될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 집권 후반기 노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성과 제도화를 꾀해야 한다. 또한 ‘87년 노동체제’의 울타리를 깨는 새로운 노동의제의 개발이 긴요하다. 향후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조합의 조직 역량 강화이다. 조직 역량 강화는 노조 조직률 제고와 노동조합의 집중성 높이기를 통해 실현된다. 문재인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사회의 보이지 않은 효과는 노조 조직화의 확대에서 확인된다. 미조직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졌고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노조 결성에 나섰다. 한국 노조의 취약한 아킬레스건은 10%대의 낮은 조직률이다. 낮은 조직률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시민권 확장을 가로 막는다. 200만 조합원 시대를 마감하고 300만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과감한 자원 집중과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며, 이 사업의 주체는 산별노조(연맹)들이다. 노조조직화를 위해 서비스산업과 청년세대에 주목해야 한다. 노조의 무풍지대였던 IT산업, 프랜차이즈업종, 문화예술, 사회서비스 분야의 신생 조직화 사례를 학습하자. 청년세대를 인입할 수 있도록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노조의 조직 문화를 혁신해야한다. 노조를 리브랜딩하고 싶다는 청년들이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나설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노조 조직형태상의 집중성을 높여야 한다. 분산되고 개별화된 노조는 사용자와의 개별 교섭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국가와 자본에 맞설 계급적 역량을 갖출 수 없다. 노조의 형식적 중앙집중성은 내용적으로 노동자의 연대의식과 역량을 가름한다.  
 
 둘째, 작업장(일터) 민주주의의 확립이다. 산업 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는 기업의 핵심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기업 내부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국가의 통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있다면, 기업의 의사결정 즉 기업지배구조도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유독 직장 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작동을 멈추었다. 한국 사회에서 경영권은 아직도 사용자의 독점적 권한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상당수 OECD국가들은 노동자(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19개 국가가 노동이사제 등 노동자 경영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한 직장 민주주의의 구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노동개혁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대화이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한국형 사회적대화기구 설립’을 제시하였고,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로 개편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문제로 계층 대표(비정규, 여성, 청년) 3인이 불참하여 본위원회는 공전되고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안정적 제도화와 원활한 작동은 정책결정 및 노사관계 제도 전반의 국가 중심성, 대기업 중심성 등의 특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쉽지 않은 길이다. 그 결과 사회적 대화는 2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육부전(發育不全)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노동의 입장에서 ‘사회적 대화’는 버릴 수 없는 활용 카드이다. 보수독점의 국회, 낮은 조직률, 기업별노사관계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 문제의 사회 의제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과 입법안을 9월까지 제시하기로 한 점을 계기로, 노동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국면 전환이 요구된다. 향후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여부가 사회적 대화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한편, 사회적 대화는 경사노위가 전부가 아니다. 지역·산업·업종 단위의 다양한 형태의 노사정간 소통과 대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방정부 시대, 서울과 경기 등 지역차원의 다양한 사회적 대화의 실험이 노동조합의 주도로 꽃 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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