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얼마나 더 일을 시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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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얼마나 더 일을 시키려고

노광표 5,004 2018.07.03 11:40
작성: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먼저 실시되는 ‘주 52시간’을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경영계는 고용노동부에 건의문을 전달하며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단속과 처벌이 아닌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였다. 정부도 이에 호응하여 처벌단속보다는 시정지시 등 6개월 계도기간을 인정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은 강행규정인데, 정부여당이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 행태는 월권행위이자 위헌적 행태라고 전면 비판하고 나섰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연이어 근로시간 위반 처벌 6개월 유예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라 할 만하다.
 
그런데 52시간 근로시간을 둘러싼 논란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2004년부터 주5일제가 도입되었는데 주당 40시간이지 왜 52시간인가. 올 2월 국회에서 68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단축했다는데 그럼 우리의 근로시간은 68시간인가. 경영진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위협이라고 하는데, 주 52시간은 정말 무리한 근로시간 규제인가 혼란스럽다.
 
먼저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개정법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거 근로기준법은 주당 법정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면서도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개념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정의함에 따라 토·일요일 8시간씩 16시간의 추가근로가 가능했다. 정부의 근로시간에 대한 편법 해석에 따라 주 68시간까지 허용해왔다. 이번 개정안은 근로기준법 제2조1항제7호에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편법 운영의 싹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번 법 시행은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기상조라고 강력하게 반대한다. 보수언론들은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줄면 기업의 추가부담이 연간 12조원 증가할 것이고, 그 부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득감소도 예상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재계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우려는 반복되는 기우였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04년 주5일제가 시행될 때 국가경제에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004년 경제성장률은 4.9%, 2005년 3.9%로 주6일제를 시행하던 2003년의 2.3%보다 높았다.
 
소모적인 논란에서 벗어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를 전개할 때이다. 한국의 과로사회는 더 이상 자랑꺼리가 아닌 해결해야 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 OECD 평균(1764시간)에 비하면 300시간 이상 많다. 정부도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소득은 3만달러 수준이지만, 삶의 질은 1만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고백했다.
 
장시간노동은 노동자의 건강 악화 및 산업재해 빈발, 일·가정 양립과 워라벨(Work & Life Balance)을 어렵게 한다. 장시간노동은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경영에서도 비효율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16년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서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심각한 기업문화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직장인들은 주중 2~3일을 야근하고 있고, 3일 이상 야근자도 43.1%나 됐다. 대한상의는 야근을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야근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굴뚝산업 시대의 노동문화가 여전히 한국 기업문화를 지배하며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사가 힘을 합하면 노동시간 단축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1년 7월 주52시간 상한제가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면 늘어나는 일자리를 13만2천여 개로 예상하였다.
 
오래 일하는 것이 생산성을 담보하는 시대는 끝났다. 4차 산업혁명은 학습과 혁신 그리고 협력을 요구한다. 앙드레 고르(Andre Gorz)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자유시간 확보는 공동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상의 새로운 매력’과 ‘감정의 소생’이라는 자극을 준다고 말했다.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전환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혁신 전략이다.
 
#. 이글은 뉴스토마토  2018-06-29 06:00:00 시론기사에 실었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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