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노동포럼

[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진단>

() 2,019 2023.12.26 09:00

[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 <진단> -




○ 일시: 2023년 10월 18일 오전 10시

○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

○ 참여: 나병호 금속노련 정책국장,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가나다 순) 

○ 사회: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 전 지구적 과제가 된 기후 위기 대응 상황을 한국 산별단위 노동조합에서는 어떠하게 진단하고 어떤 대응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까? 한국노총 소속 금속노련과 전력연맹,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 간부들이 모여 진지하게 나눈 성찰과 모색의 논의 결과를 두 차례에 나눠서 게재합니다. 먼저 노조 간부들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을 공유하고, 2024년 1월 초 실천에 대한 고민을 담은 <처방>을 공유하겠습니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하, 이주환): 반갑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노동조합 포럼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논의는 기후 위기라는 게 우리에게 어떤 문제인가를 ‘진단’하는 거 하나, 그리고 우리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 ‘처방’하는 거 하나, 이렇게 두 덩어리를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특히 처방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그런 방향 제시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우리 조직에서 이런저런 어떤 프로그램들을 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게 좋겠더라, 하는 구체적인 평가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기형 국장님부터 돌아가면서 기후 위기로 인한 조직 내부의 문제 상황 진단부터 말씀해주시죠. 

노동조합이 인식하는 기후 위기 피해

오기형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이하, 오기형): 금속노조는 기후 위기의 여러 가지 측면 중에 일단 생산 규제 문제, 즉 ‘내연기관 자동차를 언제까지 생산하고 언제부터 생산을 중단하는가’가 얼마 전까지는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국제통상에서의 제약 문제,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의 수출이 가능하냐 아니냐’, 또한 그와 연결해서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들을 어떻게 줄일 거냐’, 이런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품 전환 문제로 시작해서 공정 전환 문제로 옮겨가는 형태고, 이런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병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이하, 나병호): 금속노련 소속 대기업 사업장들은 전기, 전자, 기계 등 업종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업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전반적으로 기후 위기와 관련된 문제의식들을 어느 정도 가진 상황이지만, 대부분은 좀 좁게, 주로 임금 협약이라든가 향후 기후 위기로 인한 시설투자라든가 생산의 변화가 우리의 교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 한편으로, 금속노련 소속 6백여 개 사업장 중에서 2백 개 이상이 자동차 부품사거든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이쪽은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노조조직에서도 위기의식을 나타내기는 하는데,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승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이하, 이승철): 공공운수노조는 워낙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까 조금 복잡한데요. 어쨌든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저희는 ‘전환 영향’이라고 부르는데, 기후 위기에 따른 직접적인 고용 위협이나, 혹은 반대로 고용의 증가나 산업의 확대를 기대하는 곳들이 공존합니다. 부정적인 전환 영향을 받는 단위는 다들 아시는 대로 발전 부문이 대표적입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2036년까지 사실상 거의 폐쇄하는 걸로 계획돼 있어서, 거기서 일하는 간접고용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아주 구체적으로 고용 위협을 느낍니다. 이미 폐쇄 절차를 밟은 몇몇 발전소 사례에서 고용보장과는 거리가 먼 경우를 보면서 더욱 실제적인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있고요. 반대로 긍정적인 전환 영향을 받는 곳이 운수 쪽일 것 같습니다. 예컨대 철도나 지하철 같은 경우는 내연기관차 사용을 중단하고 공공교통을 확대하겠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걸 기회로 어떤 사업을 할 거냐, 이렇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철도파업 역사상 처음으로 ‘녹색 철도’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어요.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땐 철도노조가 되게 생뚱맞아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걸 제기할 때가 됐다는 거에 다들 동의하는 상황입니다. 
다른 하나는, 저희는 ‘적응 영향’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인 게 병원 노동자들입니다. 최근에 온열질환 환자들이 매우 늘어나고 있어요. 또한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가인수공통감염병(zoonosis)1) 확산 등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조건 때문에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늘어나고요. 그리고 고온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 예컨대 학교급식 노동자라든지, 택배, 통신, 전봇대 타는 통신 노동자들, 이게 다 고온 옥외작업을 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변화된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도록 할 거냐에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항공 노동자들도 기후 위기에 영향을 받아요. 하늘에도 길이 있지 않습니까? 안전하게 비행하려면 정말 중요한데, 이게 최근에 엄청 많이 바뀌고 있답니다. 승무원이나 조종사가 안전 위협을 느끼는 상황까지 와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기후 위기가 정말 다양하게,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1) 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전염병]

이주환: 아무래도 공공운수노조가 워낙 다양한 노동자들을 포괄하다 보니까, 문제의 파악이 좀 더 구체적이고 범주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금속산업을 대표하는 두 조직에서도, 혹시 ‘이런 것까지 기후 위기에 영향받는 걸까?’라고 느끼신 경우가 있을까요?

오기형: 조선, 철강 등 굵직한 사업장들이 금속노조 소속으로 조직되어 있는 업종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영향이 어느 정도 쉽게 예상되는 경우여서요. 이를테면 그동안에도 워낙 고온 작업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 부분을 이미 단체협약을 통해 대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아침 9시에 기상청 발표에서 온도가 몇 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면 점심에 몇 시간은 옥외작업을 안 하든지 하는 식으로요. 금속노조 입장에서 비전통적인 부문들을 보면, 통신이나 수리 노동자들의 옥외작업, 예컨대 갑자기 냉장고나 에어컨 설치나 수리 물량이 폭주한다거나, 성수기가 예전에는 2주 정도였는데 확 길어진다거나 이런 것들이 대응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나병호: 금속노련도 비슷합니다. 기후 위기가 결국에는 건강과 일자리 문제로 연결되는 건데,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워낙 고온 기후다 보니까 실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힘들어하고요. 

이승철: 듣다 보니 한 가지 사례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전주에 공공운수노조 oo리사이클링분회가 있거든요. 이분들 얘길 들어보니, 최근에 쓰레기가 정말 많이 늘어나고 있대요. 그리고 리사이클링을 하다 보면,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을 하다 보면, 악취가 나지 않습니까? 근데 인근 주민들이 악취가 심하니까 민원을 넣어서 지금 창문을 닫고 작업을 한대요. 노동자들은 아주 힘든 상황이 되는 거죠. 제가 가서 기후 위기 교육을 하니까, 그게 딱 자기들 상황이라고 보는 거예요. 기후변화로 쓰레기가 늘어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고, 또 창문을 닫고 고온 작업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그러면서 뭔가 좀 해봐야겠다고 고민하시더라고요. 지금 현장에서는 자기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사실은 기후 위기와 연결돼 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이주환: 남태섭 사무처장님께서 이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태섭 한국노총 전력연맹 사무처장(이하, 남태섭): 전력연맹에는 말 그대로 전력산업의 각 부분, 발전부터 송전, 배전, 판매까지 계통에, 정비 부분까지 포함이 돼 있는데요. 사실 기후 위기에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제일 첫 번째가 ‘에너지 전환’이잖아요.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석탄화력발전소 폐지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당장 그 과정에서 예전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텐데요. 여기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먼저, 공간과 시간의 불일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금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는 대신에 LNG발전소 건설로 전환하고 있는데, 당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하고 곧바로 당진에 LNG발전소가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곳에 시간을 두고 생기니까 불일치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거죠. 또 하나는, 석탄화력발전소는 공기업이 하던 거였는데, 새로 생기는 LNG발전소도 공기업이 하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이미 화력발전에서만 민간이 발전량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신(新)재생에너지 부문에서는 90%를 민간이 합니다. 이게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위한 대책으로 정부가 직무훈련 그런 걸 제시하는데, 이게 의미가 있으려면 공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전력 적자라든지 하는 재무구조 문제 때문에 몇 년째 재생에너지 투자를 못 하게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노동자들은 이대로 고사하는 거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이런 걸 가속화시키는 게 시장개방, 우회적인 민영화 이런 움직임인데, 이 부분은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기후 위기 피해를 증폭하는 구조적 원인

이주환: 여러분 말씀을 듣다 보니까 기후 위기라는 게 독립적으로 피해를 가져온다기보다는 기존 구조적인 문제와 결합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주로 어떠한 사회구조적 문제나 흐름과 결합해 있다고 보십니까? 이승철 실장님부터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승철: 질문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두 가지 키워드가 나올 거 같아요. 하나는 ‘민영화’고, 다른 하나는 ‘노동안전’입니다. 먼저, 남태섭 사무처장님도 말씀해주셨지만, 지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공공부문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거든요. 정부는 탄소가스 발생시키는 석탄화력발전 퇴출하고 재생에너지 도입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던 공기업이 물러난 자리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민간기업을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해상풍력 같은 경우는 거의 해외 투기자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 퇴출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이 과정이 민간 중심으로 구조화되는 것에 관한 반대 투쟁, 즉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反)민영화 투쟁’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노동안전은 이미 앞에서들 말씀해주신 것처럼, 기후 위기로 인해 고온 작업이 늘어난다거나 노동 강도가 세진다거나 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잖아요.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방어하고 있는데, 또 단협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아주 많잖아요. 이러한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정부에게도 필요할 텐데, 이런 부분이 잘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투쟁을 연결해보면, 민영화와 노동안전이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기형: 어쨌거나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서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는 건 소멸하는 생산에서 새로 생기는 생산으로 노동력을 이동시킨다는 거잖습니까? 이렇게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시장 내에서 노동자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전제로 이야기하는데, 한편으로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중구조’는 내부 노동시장과 외부 노동시장 사이 노동조건 격차와 노동자의 이동 불가능성이 특징이잖아요. 요컨대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지만 이동(전환)이 안 돼요. 소멸하는 부문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다른 부문의 대기업으로 옮길 수가 없는 거죠. 
또, 전환에는 돈이 듭니다. 전환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집행을 해야 하고, 또 일자리가 소멸하는 사람들에게 당분간 돈을 주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하고 숙련을 형성시키게 해야 하는데, 모두 돈이 드는 일이거든요. 돈이 없는 부문이나 회사의 노동자들에게는 전환 기회 같은 게 없는 거죠. 대기업 정규직들은 기본적으로 회사가 돈이 있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마련할 역량이 있으니까 기업 내에서 이동합니다. 그런데 전환 과정에서, 물론 산업별노동조합이 대응하긴 하지만, 우리가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 중에서는 진짜 악 소리도 못 내고 이동 못 하고 묻히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말하자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기존의 불평등 구조가 기후 위기로 인한 과정과 그대로 연결됐다고 봅니다.
이거랑 결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얘기가 재벌독점 문제인데요.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가, 자동차산업이든 철강산업이든 전자산업이든, 현대나 삼성 등 재벌 소속 원청 대기업을 중심으로 쫙 줄 서서 수출에 매달린 수직계열화 구조로 되어 있잖아요. 이런 조건을 고려하면 전기차로 상징되는 최근 산업 전환 흐름은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던 거거든요. 어쨌든 수직계열화된 산업 내에 새로운 대기업들,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와서 판을 흔들고 그로 인해서 독점 구조가 깨지면 중소기업들이 협상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정부나 자본의 태도와 움직임을 보면, 산업 재조직화 과정에서 이전보다 독점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 같아요. 산업 생태계의 불균등성 문제도 기후 위기를 타고 심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나병호: 비슷한 생각인데요. 기후 위기 대응은 결국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시다시피 산업구조가 워낙에 불균등한 원하청 관계와 그로 인한 불공정 거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재벌대기업 원청을 대상으로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또 정부 상대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요구로 들어갈수록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생기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재벌대기업과 1차 또는 2차 벤더 사이에서 원하청의 불공정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1차나 2차 벤더와 그 하청사들 사이에도 불공정 문제 또한 존재하고요. 불공정거래 문제는 최고 꼭대기에서부터 쪼아오면 영향이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내 하청에 대한 해고 문제 같은 것도 반복되고 있음을 또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디지털화나 탄소중립에 따른 여러 문제 속에서 이익의 독과점 문제, 일자리 문제는 하청사나 하청사 노동자들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가고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말로는 상생협력을 외치지만 지금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카르텔’ 수준의 언급이 있지 않은 한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태섭: 앞에서 기후 위기로 인해 어떤 구조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지 다들 잘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그 밑에 깔린 ‘사회적 합의’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후 위기 대응을 하는 게 ‘자본의 요구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지구 시민으로서 어떤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에 따른 것인가’라고 봤을 때, 후자로부터 출발한다면 사회적 합의가 꼭 필요하고 전자로부터 출발한다면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못 느끼겠죠. 지금 한국 정부가 그렇거든요. 예를 들면, 당장 수출을 가로막는 문제, RE100 문제 이런 것들은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만, 산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 대책 세워주면 되는 거 아니야? 사회적 합의가 왜 필요한데?’라고 나오는 식이죠. 유럽 등 해외 사례에서는, ‘지구를 구성하는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서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 각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자본, 노동, 정부가 모여 역할을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강조되는 거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게 없이 출발하면서 산업 재편으로 인한 피해가 일방적으로 전가되고 그중 일부에 대해서만 시혜를 베푸는 식으로 보상하는 ‘정의롭지 못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죠. 

정부·자본의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노조의 평가

이주환: 다음으로, 대응 상황을 점검하겠습니다. 잘 지적해주신 것처럼 지금 기후 위기 대응은 당사자로서 노동의 대표조직은 배제한 채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해당 부문에서 국가와 자본의 기후 위기 대응 양상, 이들이 세우고 있는 목표 등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내리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십시오.

오기형: 저희가 보기에는 금속산업 자본은 기후 위기를 ‘이윤 창출 기회’로 보는 측면이 강한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어떻게 돈을 벌 거냐, 이것이 핵심인 거죠. 물론 기업이니까 돈을 벌어야죠. 돈을 벌어서 고용도 많이 챙기고 그러면 좋은데, 정작 가장 중요한 감축 목표를 뒤에 두는 것 같아서 우려됩니다. 이를테면 회사들은 진지하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나서기보다는 문제 행동의 허용 범위를 확인하는 거 같아요. 정부에 압박하거나 로비해서 이 정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건 허용하라고 요구하는 걸 우선하고 있다는 거죠. <포스코>가 환경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외국에서 광산개발이나 리튬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게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심하면 제품이 안 팔릴 테니까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고, 여론과 정부를 상대로 허용선이 어디까지인지 찔러보면서 확인하는 그런 양상처럼 보입니다. 

나병호: 지금 정부가 발전이나 자동차처럼 기후 위기로 산업 재편이 진행되는 부문과 관련해서 일자리 대책이나 기업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 잘 모르겠어요. 이게 현실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 크거든요. 현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대책인 거 같아요.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는 걸 보더라도 실효성 없는 경우가 많고요. 예컨대 전기차 전환 지원을 위한 교육훈련을 한다고 해서 살펴보면, 하루나 이틀, 길어도 3일짜리 프로그램이에요. 근데 정부 자료에는 그게 대단히 큰 교육훈련인 것처럼 표현돼 있거든요. 정부가 산업 전환 대응이라면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돈을 쓰고는 있지만, 정작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만들어지지 못하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태섭: 석탄화력발전 같은 경우에 90%가 공기업이 소유하고 있는데, 공기업 사용자는 정부 정책을 100% 순응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정부와 자본을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긴 한데요. 어쨌든 공기업 내부 구성원들은 노사 가릴 거 없이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적극성을 갖고 있습니다. 빨리 넘어가야 한다는 공통의 의식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만들어진 겁니다. 불과 5년쯤 전만 하더라도 ‘석탄발전소를 어떻게 폐쇄해? 석탄 아니면 전기를 뭘로 생산하게? 에너지 전환 그런 거 제대로 안 돼’ 이런 생각이 무척 강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실제로 발전소가 폐쇄되는 걸 눈으로 보면서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식이 생겨난 거죠.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부의 분위기가 ‘공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하지 마’라고 하고 있어서 의지만큼 사업을 못 펼치고 있는 겁니다. 
어쨌든 이미 ‘탄소중립기본계획’이 만들어지고, 또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제시된 시간표 따라 일정이 쭉쭉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어떻게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늦추는 게 우리의 목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이제 없어요. 에너지 전환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과정에서 ‘고용보장’을 목표로 하는 거죠. 노동자 설문조사를 보면 조건 없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긍정 응답이 30~40%인데, ‘고용이 보장된다면’이라고 조건을 달면 찬성률이 80%까지 올라가요. 그만큼 고용보장이 현안으로 부상해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와 사용자가 제도적으로 고용을 보장하면 탈석탄화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을 텐데, 아직까진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고용보장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위기의식이 여전히 높습니다.

이승철: 저희도 비슷합니다. 공공기관의 사용자는 사실상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와 사용자가 구분이 안 되는 문제가 있고요. 제가 보기에 지금 정부가 선택한 전략은 ‘이익은 밖으로 위험은 아래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영화는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확대되는 부분에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분야는 민영화가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철도 분야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를 만나보면 철도나 지하철이 공공성이 커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확장되는 부분을 민간으로 하려고 해요. 
한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다 아래로 떠밀고 있어요.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한 정부 대책을 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태안지역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고용 전환 교육을 하겠다고 불러서, 바리스타나 관광가이드 훈련을 해요. 이건 전환 교육이 아니죠. 정부나 사용자는 책임 안 질 거니 그냥 자영업자가 돼서 알아서 살라는 거죠. 전환의 문제로 인한 피해와 고통을 개인화하는 겁니다. 이렇게 ‘민영화’와 ‘개인화’의 흐름이 중첩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은 책임은 평등하지 않거든요. 개인하고 기업이나 정부가 책임이나 의무가 같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현재 정부의 대응은 은연중에 개인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 같아요. 

남태섭: ‘탈석탄’과 관련된 정부의 고용 대책은 폐쇄되는 발전소 인력을 다른 발전소로 배치전환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걸로 부작용을 흡수하겠다는 방식이거든요. 아직까진 폐쇄된 발전소가 몇 개 없어서 그런지 정부가 ‘봐라, 아무런 문제 없다, 아무도 안 잘렸다’ 하고 있지만, 2036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가 거의 모두 폐쇄된다면 배치전환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걸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있죠. 그 상황을 준비하는 게 정부의 역할일 텐데, 지금 대책이라고 하는 거는 ‘직무훈련 잘 시켜줄게’ 이런 식입니다. 직무훈련이라는 것도, ‘이 훈련을 받으면 내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보장이 있어야 수용성이나 효과성이 높아지는데, 그게 없는 상태니 누가 이걸 받으려고 하겠어요.

현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 단절인가 연속인가

이주환: 지금까지 정부가 탄소중립 내지는 산업 전환 대응 관련해서 제대로 된 실천을 안 해왔던 것 같은데요. 특히 현 정부의 태도 등과 관련해서 지적하거나 비판할 게 있을까요? 과거와 연속성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단절성이 있는 건가요?

남태섭: 에너지 전환 부분에서 보자면 전 정부에서 현 정부로 넘어오면서 목표치가 달라진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에너지 믹스 부분에서 원자력 전기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할 거냐 정도의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인 목표와 시간표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에너지 전환 관련해서 가장 기본적인 게 ‘전력수급기본계획’인데요. 올해 2월 1일에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됐는데 기존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승철: 저도 이전 정보와 현 정부 사이에 차이점은 발견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사실 지금 추진하는 사업 대부분은 지난 정부에서 만든 것을 그대로 집행하고 있는 양상이 커요. 가장 최근 사례는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산업전환법(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등 지원법)’이에요. 여야가 같은 목소리로 노동계나 환경기후운동 진영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입법을 추진했죠. 결국은 법에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를 못 썼어요. 두 정부가, 두 정당이, 노동자들에게는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태섭: 생각해보니 다른 게 하나 있네요. 사회적 합의 부분에서 더 후퇴했죠.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를 축소하고 오히려 노동의 대표자들을 배제했으니까 달라진 거죠. 

이승철: 저는 이게 큰 차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윤석열 정부가 좀 더 노골적이고 문재인 정부는 좀 더 지능적이었다는 정도라고 봅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하에서의 탄소중립위원회도 사실상 기후운동 진영 상당수의 목소리나 노동조합의 절반은 배제한 상황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지금과 이전이 크게 차이는 없다고 평가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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